휠체어를 탄 강사가 보여준 것: 어댑티브 필라테스라는 빈자리 > 칼럼

본문 바로가기

칼럼

휠체어를 탄 강사가 보여준 것: 어댑티브 필라테스라는 빈자리

profile_image
필라리S
26-06-05 08:53 34 0

본문

신규 상담 전화에서 "제가 휠체어를 타는데, 수업이 가능할까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많은 강사가 거절의 이유부터 떠올립니다. 배운 적이 없어서, 기구가 맞지 않아서, 다칠까 봐. 그런데 미국에서는 휠체어를 탄 강사가 휠체어 이용자 14명을 모아 그룹 수업을 열었고, 별다른 홍보 없이 일주일 만에 자리가 마감됐습니다. 수요가 없었던 게 아니라 받아 줄 공간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1. 회원에서 강사로: 안나 사롤의 경로

미국 BODYBAR 필라테스의 강사 안나 사롤은 열네 살에 척수 손상을 입으면서 7년간 이어 온 체조선수 생활을 접었습니다. 성인이 된 뒤 다시 몸을 움직일 방법을 찾다 회원으로 필라테스를 시작했고, 어린 시절 몸에 새겨진 규율과 정밀함을 그 안에서 다시 만났다고 말합니다. 그의 수련을 지켜본 스튜디오는 강사 교육을 권했습니다. 장애 당사자의 경험이 스튜디오의 접근성을 넓히는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휠체어를 탄 수강생이 휠체어를 탄 강사로 성장한 이 경로 자체가, 기존 지도자 교육과정이 미처 상상하지 못한 그림이었습니다.

2. 홍보 없이 일주일 만에 마감된 수업

사롤이 미국 캔자스시티에서 연 어댑티브 클래스에는 척수 손상이 있는 휠체어 이용자 14명이 참가했습니다. 체간 안정성이 온전한 사람부터 거의 없는 사람까지 참가자 상태가 제각각이었기 때문에, 수업은 한 팔로 몸을 지지한 채 코어를 동원하는 싱글암 동작을 중심으로 설계됐습니다. 현장에는 물리치료사와 작업치료사를 함께 배치해 안전과 심리적 편안함을 같이 챙겼습니다. 사롤은 이 경험을 통해 장애가 있는 회원들이 필라테스에 무관심했던 게 아니라, 처음부터 자신을 고려해 설계된 공간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라는 확신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참가자 다수에게는 자신을 위해 설계된 필라테스 공간에 들어와 본 생애 첫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3. 진짜 장벽은 기구가 아니다

사롤이 지적하는 업계의 공백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대부분의 지도자 교육과정이 장애 회원 지도법을 다루지 않고, 스튜디오 공간 설계도 휠체어 동선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둘째, 더 근본적인 장벽은 대표성입니다. 그는 "가장 큰 공백은 대표성"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기구는 다시 배치하면 되고 동작은 수정하면 되지만, 자신과 닮은 사람이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공간에 사람들은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롤이 SNS에 연재한 하반신 마비 당사자의 필라테스 도전 시리즈에는, 필라테스 스튜디오에서 휠체어 이용자를 처음 봤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습니다. 사롤은 현재 어댑티브 클래스를 미국 전역의 스튜디오로 확장하고 강사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을 다음 목표로 잡고 있습니다. 어댑티브를 틈새 상품이 아니라 표준으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실전 적용

내일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먼저 휠체어 동선을 상상하며 센터를 한 바퀴 돌아보세요. 출입구 문턱, 리포머 사이 간격, 탈의실과 화장실 진입까지가 점검 대상입니다. 다음으로 상담 스크립트에 "어떤 움직임이 가능하신가요"라는 질문을 추가해 보세요. 진단명이 아니라 가능한 움직임에서 출발하면 수업 설계가 시작됩니다. 마지막으로 지역의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와 미리 협력 관계를 만들어 두면 첫 수업의 부담이 크게 줄어듭니다. 국내에서도 장애인 생활체육 참여율이 꾸준히 오르고 스포츠강좌이용권 대상이 넓어지는 흐름인 만큼, 수요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

마무리

접근성은 선의나 시혜의 문제가 아니라 준비의 문제이고, 동시에 아직 누구도 선점하지 않은 시장이기도 합니다. 한 번도 오지 않은 회원이 아니라 아직 초대받지 못한 회원이라고 바꿔 읽는 순간, 해야 할 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 센터의 문은 지금 누구에게까지 열려 있습니까.


참고: Redefining Instruction: How Anna Sarol Is Expanding Adaptive Pilates — The Pilates Journal · 원문 보기
※ 본 글은 위 원문을 바탕으로 한국 필라테스 강사·원장 분들에게 맞게 재구성한 칼럼입니다. 원문 그대로의 번역본이 아닙니다.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17 건 - 1 페이지

점프보드는 유산소가 아니다: 저충격으로 파워와 뼈를 빚는 법

리포머 끝에 점프보드를 끼우고 "오늘은 유산소 좀 태울게요"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이 기구를 절반만 쓰고 있는 셈입니다. 점프보드는 카디오 코너로 취급되기 쉽지만, 사실은 파워..

코어인사이드랩 2026-06-13 11

사라지는 에스트로겐, 달라지는 수업: 갱년기 회원을 어떻게 가르칠까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여성 회원이 어느 날 "요즘은 운동을 해도 예전 같지 않다"고 털어놓을 때, 우리는 보통 의지나 그날 컨디션 문제로 넘기곤 합니다. 잠을 설치고, 별것..

코어인사이드랩 2026-06-12 14

노쇼부터 막말까지: 까다로운 회원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법

북미의 한 마스터 강사는 까다로운 회원을 마주했을 때 "이건 그 사람의 인격이 아니라 그날의 상황"이라고 먼저 마음을 정리한다고 말합니다. 스튜디오를 운영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코어인사이드랩 2026-06-11 21

체험 회원을 단골로 만드는 4가지: 무료 수업이 놓치는 것들

체험 이벤트나 할인 프로모션을 돌리면 신규 문의는 곧잘 들어온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한두 번 나와 보고는 조용히 사라지는 회원이 적지 않다. 우리는 보통 그 이유를 가격이나 위치..

코어인사이드랩 2026-06-10 23

'배를 납작하게'는 만능 큐가 아니다: 복부 끌어당김을 다시 보다

매트에 누운 회원에게 우리는 거의 반사적으로 말한다. "배꼽을 등 쪽으로 끌어당기세요." 복부를 납작하게 집어넣는 이 신호는 한국 스튜디오에서도 거의 모든 수업의 출발점처럼 쓰인다..

코어인사이드랩 2026-06-09 33

꽂히는 큐는 따로 있다: 회원의 학습 성향에 맞춰 말을 바꾸는 법

수업 중에 같은 큐를 던졌는데, 어떤 회원은 곧바로 몸을 바꾸고 어떤 회원은 눈만 끔뻑인다. 강사 잘못도, 회원 잘못도 아니다. 큐는 정답을 읽어 주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

코어인사이드랩 2026-06-08 35

잘 가르치려다 나를 다 쓴다: 필라테스 강사를 위한 세 갈래 자기돌봄

수업은 꽉 찼는데, 정작 나를 돌볼 시간은 비어 있습니다. 좋은 강사이고 싶고, 스튜디오도 잘 굴리고 싶고, 생활비도 벌어야 한다는 마음이 겹치면 강사는 어느새 자기 몸과 에너지를..

코어인사이드랩 2026-06-07 53

열람중휠체어를 탄 강사가 보여준 것: 어댑티브 필라테스라는 빈자리

신규 상담 전화에서 "제가 휠체어를 타는데, 수업이 가능할까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많은 강사가 거절의 이유부터 떠올립니다. 배운 적이 없어서, 기구가 맞지..

필라리S 2026-06-05 35

레벨이 맞지 않는 회원, 침묵은 배려가 아니다

초급 회원이 어드밴스드 클래스에 들어오는 순간, 준비해 둔 수업 계획은 그 자리에서 무너집니다. 누구나 겪어 본 상황이지만, 정작 그 회원에게 "이 레벨은 아직 이르세요"라고 말해..

필라리S 2026-06-04 36

수업은 다 찼는데 왜 소진될까: 풀부킹 강사를 위한 단가·일정 점검

수업이 전부 찼다. 대기 명단까지 생겼다. 누구나 바라던 그림인데, 막상 그 자리에 서 보면 기쁨보다 묘한 소진감이 먼저 든다. '이게 전부인가' 싶은 마음이 드는 강사도 적지 않..

필라리S 2026-06-03 42

 

게시판 전체검색